문무왕릉 (대왕암)과 감은사지

 

경주는 언제나 설레임을 주는 도시입니다.

특별하게 코스를 정하지 않고 한 곳을 가더라도 볼 게 너무 많고 길에 나뒹구는 낙엽만 봐도 참 좋은 곳입니다.

얼마 전 구룡포에 다니러 가면서 문무대왕릉과 감은사지를 다녀왔습니다.

 

문무대왕릉 (대왕암, 수중왕릉)

 

신라의 삼국통일은 김유신과 김춘추의 큰 역할로 나중에 태종 무열왕이 된 김춘추가 왕 위에 있을 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김유신의 누이인 태종무열왕의 왕비와 태종무열왕 사이에서 태어난 문무왕 때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문무왕은 자신이 죽고나면 화장해서 동해 바다에 묻어 달라고 합니다. 죽어서 용이 되어 왜구들의 괴롭힘으로부터 신라를 지키겠다는 이유라고 합니다. 

 

대왕릉
문무왕릉

 대왕암이 실제 문무왕릉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합니다. 아주 예전에 문무왕릉을 탐사한 방송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문무왕이 죽은 후에도 신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지도에서 보면 육지에서 물이 모여서 대종천을 따라 흘러서 감은사 앞을 지나서 동해로 흘러갑니다.

 

만파식적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이 감은사를 완성한 후, 죽어서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이 된 김유신이 용을 시켜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에는 합쳐지는 대나무를 보냅니다. 신문왕이 이 대나무를 잘라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나라의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는 만파식적입니다. 이 또한 통일은 되었지만 갈라져 있던 백제와 고구려 유민의 민심이 통합되어 나라가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감은사 (감은사지 삼층석탑)

 

대종천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지금은 아름다운 두개의 석탑과 절이 있던 자취만 남아 있는 감은사지가 나옵니다.

 

삼층석탑
감은사지 삼층석탑

 

경주에서 가 볼 곳을 이렇게 사진 찍는 이벤트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삼층석탑은 신문왕 2년 (682년) 만들어진 두 개의 삼층석탑으로 드물게 만들어진 연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탑이라고 합니다. 

 

배치도
감은사 배치도

 

4번으로 적혀 있는 금당터가 감은사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합니다. 문무왕이 왜구를 막으면서 기원하는 의미로 감은사를 짓기 시작하고 신문왕이 완성한 절이라고 합니다.

 

금당터
금당터 아래 물길

 

신문왕은 바다의 용이 된 아버지 문무왕이 대종천을 따라 올라와 감은사로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의 마루 아래에 물길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실제 물이 들어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용이 된 문무왕의 호국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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